수수부꾸미
캐나다에서 방문중인 조카녀석들에게 대게를 좀 먹이고 싶었다.
연안부두…
인천 토박이인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서 인천에 바다가 있는 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인천 출신이라고 하면 첫 마디가 왜 “짠물”이라고 했는지 나중에야 이해가 된 것이다.
인천에 바다가 있었다.
서해바다에 인접해 있었다는 것을..
연안부두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가기는 했었지만,
왜 연안부두에서 그리 많은
생선을 판매하는지도 사실 한참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대게..
대게라면 연안부두에 가야하는 거지..
대게를 먹을 생각에 잔뜩 기대에 찬 조카들과 오늘 오후 연안부두로 씽씽~
러시아에서 공수된 대게들.
집게를 널름거리며 자신들을 잡아 갈까봐 방어하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서너명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대게를 구입하고
대게를 삶는 30분 동안 기다리면서
연안부두 이곳 저곳을 조카들과 구경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카들의 눈에
연안부두는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
이리 저리 둘러보는 중
“황해도 할머니 수수부꾸미”라고 적혀 있는 포장마차 가게를 발견했다.
수수부꾸미!
수수부꾸미는 황해도가 고향이신 엄마가 어릴 적 해주시던 음식이다
특별한 날, 혹은 비오는 날이면 구수한 수수부꾸미를
엄마는 바구니 가뜩 부쳐 주셨다.
요즘 유난히 밥 맛 없어하시는 엄마에게
고향의 맛을 맛보게 해드리고 싶었다.
가게 앞으로 갔더니
허리 굽으신 할머니가 열심히 수수부꾸미를 큰 후라이판에서 부치고 계셨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이시란다
부모님과 동향이시고
올해 93세...
6.25때 남하하셨고
전라도 나주에 피난을 하셨다는 이야기가
내게는 낯설지 않았다.
부모님께 늘 들어왔던 이야기였으니까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분처럼
서슴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93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름냄새에
허리를 꾸부리고 수수부꾸미를 부치시는데
너무 힘들지 않으신가 여쭈니,
대답 대신 이렇게 말씀하신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할거예요.제가 없으면 누가 이 맛을 내겠어!
모두 직접 만드는 거예요..목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해야죠!”
할머니와 기념 사진 한잔을 찍고는
만원에 6개하는 수수부꾸미를 들고 가게를 나섰다.
삶은 대게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할머니의 말씀이 마음을 울린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나도 할머니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아니 이렇게 고백하고
이렇게 살고 싶다.
“또 오겠습니다!..”
나는 이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
그리고 또한 할머니께서 약속하셨듯
내 자신에게도 같은 약속을 하고 싶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이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수수부꾸미와 할머니..
오늘 나는 대게를 산 것이 아니라
삶을 만났다.
수수부꾸미만큼 구수하고 진솔한 삶
수수부꾸미로 전달된 이 삶…
"목숨이 붙어 있는 한...끝까지" 살아내는 삶…
예상대로 엄마는 수수부꾸미를 맛있게 드셨고.
맛있게 드시는 엄마의 모습에서,
목숨을 다한 그 삶이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목숨을 다할 때까지..
이어지는 그 소중한 삶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Written by Mira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