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지진과 감옥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 사도행전 16장 26절
“사람은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뇌가 움직이는 방식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뇌는 가능한 한 적은 에너지로 환경을 예측하고 적응하도록 작동한다.
즉, 최소의 에너지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는 효율성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삶의 경험과 문화, 관계와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반응 방식과 신념 체계를 만들어간다.
반복된 경험 속에서 뇌는 특정한 사고와 감정, 행동의 패턴을 스스로 조직화하게 되는데,
이를 하나의 자기조직화 패턴(Self-organizing Pattern)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패턴을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옳은 것” 혹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자기조직화 패턴 또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과 타인이 바라보는 방식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러한 패턴 형성에는 장점도 있다. 반복을 통해 기술을 익히고 숙련도를 높이며 학습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도 존재한다. 한번 형성된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자신의 주관적 해석과 선입견을 통해 왜곡해서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
외부 세계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자기조직화 과정에는 흔히 ‘헵 학습 법칙(Hebb Learning Rule)’이라고 불리는 원리가 작용한다.
이는 반복적으로 함께 활성화되는 뉴런들사이의 연결이 점점 강화된다는 신경과학의 원리이다.
즉, 어떤 생각과 감정, 자기 해석을 반복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강한 신경망의 패턴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복적으로 자신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경험하게 되면,
“나는 부족하다”,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 “나는 가치 없는 존재다”와 같은 고통스러운 자기 인식의 패턴이 점점 강화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이와 같이 왜곡된 자기 이해는 하나의 신념 체계처럼 굳어져,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자기 정체성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왜곡된 자기 정체성을 바탕으로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되고,
관계가 형성되고, 여기에서 행동이 나온다. .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결국 왜곡된 패턴 속에서 삶을 살아가게 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만약 어린 시절부터 건강한 사랑과 수용 속에서 균형 잡힌 자아 정체성을 형성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왜곡된 자기 정체성이 깊이 자리 잡게 된다면, 그것은 한 인간에게 하나의 재난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고착되어 웬만해서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왜곡된 자기 정체성이 변화될 수 있을까.
삶에는 다양하고 유용한 여러 치유의 도구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내게 하나의 깊은 통찰을 준다.
삶의 지진, 곧 삶의 고통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내 삶의 크고 작은 지진들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았던 내 자신에 대한 감옥의 기초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문들이 열리기 시작했음을 깨달는다.
물론 누구도 극심한 고통이나 심리적 외상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고통이 반드시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도 아니다. 어떤 고통은 사람을 깊이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태도와 방향을 선택할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통제할 수 없었던 삶의 사건들, 예측할 수 없었던’ 삶의 지진들은 내가 만들어 놓은 감옥의 기초를 흔들었다."
내 자신에 대한 감옥, 세상에 대한 감옥, 타인에 대한 감옥의 기초를 흔들고 묶여 있던 사슬을 풀고
열린 문으로 세상으로 향하게 했다.
삶의 지진을 일부러 초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피할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지진이라면,
그 앞에서 무너지고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진정 누구인지, 내 삶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새롭게 탐색할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로고테라피를 창시한 빅터프랭클 박사(Dr.Viktor Frank)l은 나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수용소에서 누군가는 돼지였고, 누군가는 성자였다.”
삶의 지진이 어쩌면 우리를 이렇게 초대하는지도 모른다.
설령 그 지진이 내가 갇혀 있는 감옥의 기초를 완전히 흔들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감옥 안에서도 여전히 내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를 선택할 자유가 나에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오늘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 내 삶의 감옥을 흔들어주었던 모든 삶의 지진에 감사한다고.
그 지진들이 오늘의 나, ‘원래의 나’를 발견하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나를 나오게 했고, 행동하게 했으며, 나를 넘어선 더 넓은 세상으로 걸어가게 했기 때문이다.
삶의 수많은 지진들은 실제 내 뇌의 신경망에 변화를 일으켰고,
왜곡되어 굳어 있던 오래된 연결들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연결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내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재조직화의 과정, 사슬을 풀고 새 문을 통해 세상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사람은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것이다”라는 말...
그러나 어쩌면 정말 필요한 것은 나를 가두고 있던 왜곡된 패턴들이 먼저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왜곡된 두려움과 거짓된 자기 이해라는 사슬을 풀어낼 때, 그 감옥에서 새 문을 열고 나올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피할 수 없는 지진이, 고통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선물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