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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김미라

‘수용소에서 누군가는 성자였고, 누군가는 돼지였다.’

로고칼럼 2

‘수용소에서 누군가는 성자였고, 누군가는 돼지였다.’

김미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극한의 인간 한계의 환경인 독일 나치수용소에서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어떠한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내가 처한 환경이 아니라 나의 자유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다는 빅터프랭클 박사 (Dr.Viktor Frankl)의 로고테라피(logotherapy)는 진정한 자유와 책임의 부재로 인한 ‘의미 상실의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말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하는 것은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가 하는 등의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하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수용소라고 하는 극한의 고통이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수용소라고 하는 주어진 최악의 환경이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를 결정한다면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성자가 되거나, 혹은 모두 돼지가 되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러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배급 받은 한조각의 빵을 더 배가 고픈 사람에게 나누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것까지 빼앗아 먹습니다. 수용소가 아니라 나의 선택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 인가를 결정한 것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자가 될 것인지, 돼지가 될 것 인 지라고 하는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이 본성적으로 타고 난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동기입니다. 내가 삶에서 어떤 동기, 어떤 의지에 가치를 두고 있는가 하는 것이 오늘의 나의 감정, 생각, 태도, 선택 등을 포함한 나의 모든 행동을 결정합니다.


프로이드 박사의 정신분석학 (Psychoanalysis), 애들러 박사의 개인심리학 (Individual Psychology) 과 함께 비엔나 3 대 심리치료학파중에 하나인 빅터프랭클 박사의 로고테라피 (Logotherapy)는 인간을 움직이는(move) 동기(motivation)를‘ 의미에의 의지(will to meaning)’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고테라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인 빅터프랭클 박사에 의해 개발된 심리치료입니다. 신경과 학자이기도 했던 빅터프랭클 박사는 인간의 동기를 의미에의 의지로 설명하고, 나치수용소에서 수년동안 수감되어 있는 동안 자신의 경험과 함께 수감되어 있던 수감자들을 통해 인간의 ‘의미에의 의지(will to meaning)’가 정신분석학의 쾌락에의 의지(will to pleasure)와 개인심리학의 우월성(권력,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를 넘어 근본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또한 고통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때 우리는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하지만, 삶의 최악의 상황에서도 언제나 존재하는 ‘삶의 의미(meaning of life)’로 인해 어떤 순간에도 우리 삶에 희망이 있음을 입증하였습니다.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삶의 어떠한 어려움도 견디어 낼 수있다’라는 철학자 니체의 말 처럼 우리가 절망하는 것은 삶의 고통이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고통이나 어려움의 이유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의미를 포함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때, 인간이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미에의 의지가 억압되거나 무시되거나 혹은 좌절되었을때 실존적인 공허(existential vacuum)를 경험하게 됩니다.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지만, 그것이 의미로 채워지지 않을때 우리는 실존적 좌절(existential frustration)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실존적 좌절이 만성이 되었을 때 결국 실존적 공허와 좌절감은 우울증, 중독, 공격과 같은 실존적(혹은 영적) 신경증(existential or spiritual neurosis) 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존적 공허감이나 좌절, 그리고 실존적 신경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삶의 최악의 상황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에는 차원적 존재론이라고하는 로고테라피의 인간을 바로 보는 세계관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차원적 존재론에서는 인간을 몸과 마음의 2차원의 존재가 아니라 몸과 마음 그리고 영(spirit)의 3 차원의 존재로 바라봅니다. ‘인간이 영적이다’라는 말은 종교의 유무나 종파에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환경적인 고통과 어려움이 인간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몸과 마음은 상처받고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은 상처받거나 아프지않다. ‘영적이다’라는 말에는 영적인 존재(spiritual being)로서의 인간은 한번도 아픈적도 없고 병든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아프거나 병들지 않은 희망의 존재의 존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만약 인간을 신체적인 차원의 존재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신체적인 장애나 질병으로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를 극복하고 보다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도저히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인간을 심리적인 차원의 존재로만 이해한다면 엄청난 심리적인 트라우마나 고통에도 불구하고 고통 이전보다 더욱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신체적인 장애나 질병, 한계, 혹은 심리적 인 트라우마나 고통과 같은 상처나 아픔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자기초월적인 삶을 살수 있는 것은 우리가 모두 예외없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상처받고 아플 수 있지만, 우리의 영은 절대로 아프거나 병들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먹구름이 끼고 비바람이 쳐서 태양을 볼 수 없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태양의 빛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태양이 언제나 존재하며, 빛을 발하듯이 우리의 영도 그 빛을 발합니다. 태양이 상처 받지않고 아프지 않듯이 우리의 영도 상처받고 아프지 않습니다. 삶의 먹구름과 비바람에도 태양과 같은 빛을 지닌 우리는 영적존재입니다.

내 자신이 아프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영적 존재임을 믿는 한, 다른 사람 역시 영적 존재임을 믿는 한 어떠한 삶의 어려움에도 어떤 신체적, 심리적 한계에도 우리 모두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구름과 비바람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의미라고 하는 빛(logohints)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용소에서 누군가는 성자였고, 누군가는 돼지였다.’


수용소는 빅터프랭클 박사에게 피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의 환경이였습니다.

그러나 수용소라고 하는 고통이 그를 공허하게 하거나 좌절시키지 못했습니다. 최악의 수용소 안에서도 그의 영은 상처받거나 아프지 않았으며, 영적인 존재로서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자유의지의 존재로서 그는 고통 중에 의미를 발견하였고,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하였습니다.

빅터프랭클 박사 처럼 우리가 물리적인 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어쩌면 각자 자신만의 수용소에 갇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가족, 남편, 아들, 딸이 나의 수용소일수 있다. 현재 나를 괴롭히고 있는 신체적, 심리적 질병이 내가 갇혀있는 수용소 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상처 많은 나의 어린시절이 나의 수용소 일 수도 있고, 낮은 자존감이, 열등감이, 죄책감이 나의 수용소 일 수 도 있다. 내가 처한 열악한 직장환경이 나를 가두고 있는 수용소 일 수도 있습니다. 수용소라고 하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어쩌면 나는 선택하거나 바꿀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지 나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고통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나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수용소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고통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것인가?

성자가 될 것인가, 돼지가 될 것인가? 오직 나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수용소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프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간호사회지 투고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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